사흘간의 질주가 마치 폭풍처럼 지나갔다.
경기 열흘 전까지도 개최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룬 경기인 만큼 경기보다 경기를 기다리는 기간이 더 조마조마 했던 경기였다. 하지만 그동안 치러진 국제급 규모의 여느 스포츠 경기와는 달리 운영상 몇몇 허술한 점이 영암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자칫 안 좋은 이미지로 비춰질까 내심 걱정이다.
국민의 무관심, 운영 미숙은 누구 탓? 애초부터 이미 국민 대다수가 ‘영암에서 경기를 하면 누가 보러 오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시작된 경기였다. 대회 개최가 확정될 때부터 불거진 위치 문제는 지금까지도 족쇄처럼 따라다닌다.
게다가 결승전이 열리는 마지막 일요일에는 하늘까지 영암을 버리는 듯 보였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던 비는 결승전 시작 시간인 오후 3시가 넘어서도 그칠 줄 몰랐다. 결국 4시 5분이 되서야 경기가 시작됐지만 경기장의 관람객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비로 인접 도로를 비롯해 주차장 모두가 진흙탕이었다. 경기장으로 가는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은 곳을 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로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탓만 하기엔 너무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9월 F1 특별법으로 영암 F1 서킷 건축에 확정된 예산은 880억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7월까지 한 푼도 지급되지 않다가 FIA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지난 7월 무렵 528억원의 예상이 긴급 투입됐다.
결국 본격적인 공사는 7월부터 시작됐다. 이럴 때는 우리나라의 놀라운 건축 속도에 감사해야 한다. 솔직히 올해 F1 경기를 아무런 사고 없이 치른 것 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래서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교통편과 주차장이 열악하다는 말은 그 내막을 알고부터는 양심상 차마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충분히 옹호의 글을 썼으니 이젠 쓴소리를 할 차례.
일요일 결승전 비로 인해 중계 방송을 맡은 KBS 2TV의 시청자 게시판은 한바탕 홍역을 치뤄야만 했다.
이유인즉슨 KBS 2TV의 주말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 방송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가슴에 손을 대고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김연아가 나오는 피겨 스케이팅 프로그램 때문에 방송이 지연되거나 취소가 됐어도 이랬을까? 국민 정서의 부재는 시종일관 아쉽다.
물론 사전 예고도 없이 방송이 취소된 건 분명 방송사의 잘못이다. 하지만 날씨로 인한 시간 지연이었으니 방송국이 하늘의 뜻을 꿰차고 미리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F1 레이싱걸’이 뜬 것.
F1 경기에서는 아무도 레이싱걸(물론 국내에서는 레이싱모델로 표기하는게 옳다)을 F1 레이싱걸이라 부르지 않는다. F1을 비롯한 국제급 자동차 경주에서는 그리드걸(Grid Girls)이 옳은 표현이다.
언론사들이 앞다퉈 기존에 쓰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다 생긴 오류다.
언론도 모르는데 제대로된 소식은 어디에?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는 선수 이름 조차도 헷갈리고 있었고 경기 규칙이나 팀간의 경쟁 구도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눈치다.
F1 경기의 무지함이 만들어낸 사고는 알론소 선수의 우승 소식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라리팀의 페르난도 알론소는 선두로 달리던 레드불레이싱팀의 세바스찬 베텔을 극적으로 추월하고 우승컵을 거머쥔게 아니다.
베텔은 이미 메인 그랜드 스탠드 앞의 직선구간에서 엔진 트러블을 일으켰고 그 결과 속도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뒤를 따르던 알론소가 선두로 나서게 된 것. 계속 무전 통신으로 팀과 머신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도 경기 중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로 중계하는 바람에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만들어낸 기사다.
기자가 제일 유감인건 바로 영암 F1 서킷의 꽃이라던 메인 그랜드 스탠드 건물의 위치다.
상식적으로 패독 건물과 뒤바뀐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드 라인과 패독만 보이는 자리가 그랜드 스탠드라면 지금 티켓 가격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 바로 앞에 보이는건 영암호 뿐. F1 마니아라면 배 한척 없는 호수의 낙조를 바라보기 위해 이 자리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위치라면 서킷 전체가 보이도록 패독 건물쪽에 메인 그랜드 스탠드가 자리 잡았어야 했다. 그래야만 제일 높은 위치에서 모든 경기장을 바라볼 수 있는 골드 좌석이 제 값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반 관람석의 문제. 패독 클럽과 메인 그랜드 스탠드를 제외한 모든 관람석은 철재로 만든 구조다. 원래 일기예보 대로라면 낙뢰가 떨어질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예보가 틀리는 바람에 참극은 빚어지지 않았다. 물론 낙뢰를 피할 수 있는 피뢰침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가 오는데 당당히 우산 접으라 방송하는 장내 아나운서도 상식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무리 경기장 안전을 고려한 FIA 규정이라지만 비싼 돈 내고 땅끝까지 내려와서 비 오는데 비 맞으면서 보라고 하면 과연 누가 좋아할까?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한 노력의 부재
국내에서 최초로 열리는 국제 규모의 F1 경기였지만 외국 관람객의 대한 배려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소고기와 닭고기 메뉴가 외국인에게 낯선 음식재료는 아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나마 친숙한 비빔밥 같은 메뉴를 마련했으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음식만으로도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내국인에 치중한 메뉴 선택이 외국 관람객들에게 감점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우려대로 생소한 메뉴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햄버거에 탄산음료로 끼니를 때우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가지 문제가 더 있다. 외국 관람객 중에는 채식주의자가 의외로 많다. 게다가 종교적인 이유로 육식을 하지 않는 민족도 더러 있다. 물론 이런 관람객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일단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일본 전통 음식인 볶음 국수나 어묵, 꼬치 등의 먹거리를 비롯해 다국적 음식을 다양하게 마련해 관람객의 다양한 음식 취향을 반영한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역시 마찬가지. 같은 아시아권 나라이지만 결코 본토 음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음식으로 인한 문화 충돌은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중 하나다. 하지만 분명 외국 경기를 벤치마킹 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런 사소한 문제 조차도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한 감점요소다.
지난 주말은 대한민국이 ‘세계 3대 스포츠’를 모두 개최한 국가로 발돋움한 역사적인 날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모터스포츠 불모지인 이 땅에서 F1이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
하지만 고용인력을 창출하고 막대한 경제효과 같은 장밋빛 미래와 국가 이미지를 맞바꿀 순 없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외 언론에게 질타를 받은 숙소 문제는 애초에 관람객을 위한 모텔 같은 숙박 업소보다는 전통 한옥 펜션 같은 곳을 홍보하고 증설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영암 지역 특산물인 무화과는 단순히 포도나 배처럼 박스에 포장해 파는 것이 아닌 외국인의 입맛에 알맞은 음식으로 개발되어 이미 특화되어 있어야만 했다.
한편으로 기본적인 영어회화 조차 구사하지 못하는 스태프가 태반이라 상당히 답답했다. 사인회 도중 일부 외국인이 새치기를 하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강 건너 불구경 하던 어느 안전요원의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올해를 많은 외국인이 호기심을 갖고 영암을 찾을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어야 하는 중요한 첫 해였다. 아직까지 미흡한 인프라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F1 경기에 대한 국민의 의식과 이해는 개개인이 떠 안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A매치 축구 경기에서 한국팀이 패했을 때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K리그를 보는 사람 뿐이다’라는 지인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경기는 성공, 운영은 미흡’이라는 냉철한 평가를 내리기 전에 일단 본인 스스로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